- 100세 시대에 사람들은 건강과 돈을 걱정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마음 단련도 중요하다. 불행은 예고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때로는 사무치게 외로울 수 있다. 그때 단단한 마음은 인생의 고비를 버티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체력을 위해 운동을 하려면 일주일에 세 번은 해야 되는 것처럼, ‘마음 운동’도 일주일에 세 번은 해보자. 이 칼럼은 마음 운동을 위한 그림 읽기, 그 중에서도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그림으로 내 마음 읽기를 담아보려 한다.
사람의 오감 중에서는 ‘시각’의 영향력이 가장 강하다. 요즘 우리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많이 이용하게 되면서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로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이미지의 전성 시대이다. 이런 이미지 시대에 맞게 그림으로 정서관리를 하면 어떨까?
그림은 어른들의 마음에 주는 영양제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나 스스로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마음의 영양보충이다. 어른에게 그림 감상은 어린이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둔다. 또한 그림은 지성과 감성이 흥미로운 탐험을 하게 하면서, 다른 이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기도 한다. 그림 속에 나타난 다각적인 감정들과 밀고 당기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근육이 마련되어 있다.
마음을 읽는 정서의 밀고 당김은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유지’와 닮았다. ‘거리유지 공감법’이다. 몰두라기보다 차가운 애정과 뜨거운 무관심이다. 너는 너, 나는 나이지만,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림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비판의 오만을 내려놓자. 내가 보는 그림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인정하자. 그림을 인정하는 순간, 그림 속의 감정들과 내 감정의 기운이 운율을 이루며 생동감 있게 꿈틀댄다. 바로 기운생동이다. 그림으로 내 기분이 밝아지고, 분노는 누그러지며, 슬픔은 위로 받고, 즐거움은 공유하게 된다. 혼자서 감정조절이 잘 안되던 사람도 그림을 보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이제 그림 속에 숨겨져 있는 마음의 코드를 읽어보자. 모든 독서가 오독이라고 하듯이, 모든 그림감상이 오해여도 좋다. 내가 너를 인정하는 순간, 너는 나의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그림은 어른들의 마음에 주는 영양제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나 스스로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마음의 영양보충이다. 어른에게 그림 감상은 어린이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둔다. 또한 그림은 지성과 감성이 흥미로운 탐험을 하게 하면서, 다른 이에게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기도 한다. 그림 속에 나타난 다각적인 감정들과 밀고 당기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근육이 마련되어 있다.
마음을 읽는 정서의 밀고 당김은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유지’와 닮았다. ‘거리유지 공감법’이다. 몰두라기보다 차가운 애정과 뜨거운 무관심이다. 너는 너, 나는 나이지만,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림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비판의 오만을 내려놓자. 내가 보는 그림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인정하자. 그림을 인정하는 순간, 그림 속의 감정들과 내 감정의 기운이 운율을 이루며 생동감 있게 꿈틀댄다. 바로 기운생동이다. 그림으로 내 기분이 밝아지고, 분노는 누그러지며, 슬픔은 위로 받고, 즐거움은 공유하게 된다. 혼자서 감정조절이 잘 안되던 사람도 그림을 보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이제 그림 속에 숨겨져 있는 마음의 코드를 읽어보자. 모든 독서가 오독이라고 하듯이, 모든 그림감상이 오해여도 좋다. 내가 너를 인정하는 순간, 너는 나의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청송정(聽松堂)> 조선 중기의 큰 선비 청송 성수침의 독서당
만나면 즐거운 친구는 왜 멀리서 오는 것일까? 친구와의 관계는 너무 가깝지도 않게 너무 멀지도 않게 ‘거리유지 공감’이 중요하다는 지혜다. 우정의 즐거움은 ‘거리유지 공감’에서 나온다. <논어>에서 즐거움에 대한 또 다른 문구를 인용하면,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낫고,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낫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고 한다. 친구들 사이에 알고 지내는 사이, 좋아하는 사이, 즐겁게 지내는 사이 중에서, 즐겁게 지내는 것이 최고이다. 알기만 하면 차가운 관계에 머물고, 좋아하게 되면 그만큼 애증의 관계가 되고, 즐겁게 지내면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공감이 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그림에는 친구들을 만나는 그림이 많다. 친구들과 만나는 그림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림을 잘 들여다 보면, 그림 속의 친구들이 서재에 함께 앉아서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산책을 하기도 하며, 차를 마시기도 한다. 멀리 유배지에 가 있어도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다.
배움의 기쁨이 친구와 함께 하는 즐거움으로 전개되는 곳이 바로 독서의 모임이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방법으로 마음에 기쁨을 주는 것(學而時習之不亦說乎)’이다. 기쁨이라는 한자를 “열(悅)”이라는 한자대신, 말한다는 부수가 쓰인 “說”을 사용하며, ‘설’로 발음하지 않고 “열”로 발음하며 일부러 사용한 이유는 바로 ‘토론’하는 기쁨을 의도한 것이다.
친구와의 즐거움은 서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논어>의 첫 구절은 왜 배우는 기쁨과 친구와 만나는 즐거움, 다음으로 “남들이 몰라주어도 화를 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라고 마무리 한다. 인정받지 못해도 섭섭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한 마음으로 공감하는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친구는 첫째로 나와 같이 소중하다. 둘째로는 나와 다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거리유지 공감법’이며, 동아시아 그림에서 수없이 표현한 마음이자, 동아시아의 문화감성이다. 그리고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 상대방이 나를 인정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상대방의 좋은 점을 인정해 주자. 그러면 나이를 막론하고 더 많은 친구를 얻을 것이다.

<독서당계회도> (부분), 조선시대, 1570, 비단에 수묵,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보물 867호
친구(親舊)라는 단어는 친한 것이 오래되었다라는 의미이다. 한자의 뜻풀이처럼 친함이 오래가야 벗이 된다. 좋은 벗은 매달 저축하는 정기 적금과 같다. 차근차근 이자가 쌓이듯 세월도 필요하고 정성도 필요하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에서 ‘일친우일친(日親又日親)’으로, 날마다 새롭게 하려는 것에서 나날이 친하게 된다. 단, ‘거리유지 공감법‘ 이 중요하다. 그림을 읽어내는 ‘밀당의 심리학‘ 이 친구와 거리를 유지하는 친밀함으로 연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출처 : 말글표현
글쓴이 : 참기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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